'한국'에 해당되는 글 5건

  1. 2009/09/13 독도 이야기. (4)
  2. 2009/06/15 20대에겐 희망이 없다?!
  3. 2009/04/12 2002년 제주도 자전거 여행 (1)
  4. 2008/10/23 富者 혐오증
  5. 2008/10/11 군대와 공산주의

독도 이야기.

2009/09/13 04:12 Tags »

어느날 어떤 광인(狂人) 하나가 갑자기 찾아와 우리집 서재를 자기 서재라고 우기기 시작한다.
처음엔 그냥 이상한 사람 정도로 취급하고 돌려보냈다. 그런데 그런 일이 계속해서 발생하기 시작하면서
이웃들이 하나 둘씩 모여들고 나와 광인(狂人)과의 시비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다. 

그리고 심지어 그 광인은 우리집 서재가 누구 서재인지 법적으로 가려봐야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한다.
주변에서 지켜보던 이웃들도 재판을 해서 시시비비를 따지라고 거들기 시작한다.
떳떳하면 공정한 재판을 통해 우리집 서재가 내 서재임을 밝히라는 것이다.

이 상황에서 그 어떤 광인(狂人)이 엄청난 부를 축적하고 있는 실력자이고, 수많은 정치인들과 법조인까지 후원하고 있다면, 이 상황이 더 이상하게 돌아갈 가능성이 다분하다 할 수 있겠다.

이런 황당한 시츄에이션... 분명히 내 침실 옆 창고방을 개조해 만든 내 서재이고, 처음 이사를 들어올 때 부터 서재로 써오던 방인데... 갑작스럽게 등장한 광인(狂人)의 황당한 떼쓰기로 인해 내 돈까지 들여가며 재판까지 받아야하는 걸까? 이런 상황에선 그냥 무시하는 것이 상책은 아닐까?
 

어떤 광인(狂人) = 독도 영유권을 줄기차게 요구하고 있는 한 국가.
우리집 서재 = 독도.
이웃들 = 주변국.
재판 = 국제재판.

2009/09/13 04:12 2009/09/13 04:12

20대에겐 희망이 없다?!

2009/06/15 12:29 Tags » ,
  이승만 정권을 밀어낸 4.19 혁명, 80년대 6월 항쟁에 까지 대한민국의 민주화를 이끌어 온 것은 학생들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시의 낮은 고등학교 혹은 대학 진학률을 감안해보았을 때, 당시의 학생이란 사회의 선택을 받은(교육 받을 기회를 부여받은) 사회적 엘리트라고도 할 수 있었다. 사회로 부터 많은 것(공부하고 사고할 수 있는 기회)를 부여받은 엘리트로서 사회의 부조리에 저항하고 밝은 미래를 위해 광장으로 뛰쳐나간 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사회에 대한 의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최근 대선 혹은 각종 정치적, 사회적 문제에 대한 20대들의 태도를 보았을 때, 사회적 엘리트로서(물론 요즘은 엄청난 진학률로 대학생을 사회적 엘리트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지만) 대학생(혹은 20대)들의 사회에 대한 태도는 무관심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물론 그들의 직접적인 '취업' 혹은 '생활'과 연관되지 않는 정치적, 사회적 이슈이기에 침묵하거나 외면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앞으로 대한민국을 이끌어갈 20대들이 앞으로 우리 삶을 크게 바꿔 놓을 수도 있는 중요한 가치들에 대해 무관심으로 일관하는 것이 바람직한 현상이라고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앞으로 계속 살아나가야 하고 우리의 다음 세대, 다다음 세대까지 물려줘야할 한국 사회에 대해 우리는 좀 더 책임감있게 행동해야하지 않을까? 한양대 김용민 교수의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라는 반어법적인 제목의 글은 우리 20대들이 우리 자신을 다시 한번 뒤돌아 볼 수 있는 기회를 준다는 점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질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그 어투가 조금은 거슬릴 수도 있을지 모르겠지만 양식있는 분들은 그 속에서 김 교수가 말하고자 하는 진짜 의미를 잘 찾아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너희에겐 희망이 없다

김용민 한양대 겸임교수 특별 기고문

2009년 06월 08일   사회

  5월 30일. 서울광장이 ‘털렸다’. 검은 장정들이 어스름한 새벽, 잔디밭 안으로 밀고 들어와 장악한 것이다. 당일 ‘노무현 전 대통령 추모 집회’를 열기 위해 광장을 사수하려 했던 소수의 민간 활동가들은 전경의 완력(腕力)에 연행 또는 퇴거당하고 말았다. ‘노무현 추모 열기’로 재 점화될 줄 알았던 촛불은 그렇게 무력하게 꺼지고 말았다. 이명박 정부에 대해 분노하는 이들은 “80년대 대학생들이 2009년에 부활해 그 자리에 있었다면…”이라며 덧없는 통분(痛憤)만 쏟아냈다. 대학생이라. 2009년에도 선발됐고, 재학 중이고, 취업 될 때까지 졸업하려고 버티는 선배까지 합치면 학생들이 제법 있을 텐데, 왜 그들은 보이지 않는 것일까.
  강단에서 학생들에게 물어 봤다. 바쁘단다. 맞는 얘기이다. 취업하려면 입학식 끝나기가 무섭게 어학 실력 향상, 학점 관리, 스펙 쌓기에 혈안이 돼야 한다. 이 빡빡한 스케줄 속에서 틈을 내 연애도 해야 한다. 어쨌든 아주 어렵게 이들에게 시간을 얻어낸다. 그리고 시국집회 참석을 권유한다. 그러면, “그거 합법 집회인가요? 네? 집회 허가가 안 났다고요? 불법 집회네? 불법 집회를 왜 하는데요?”라는 질문이 돌아온다. 눈물 어린 준법정신이다. ‘법질서’를 강조하는 이명박 대통령의 표창이 뒤따라야 할 부분이다. (그러나 3·1, 4·19, 5·18, 6·10 중에 합법집회가 있었나?) 그렇게 해서 간신히 설득해 집회 장소로 데리고 나와도 이들의 ‘까칠함’은 꺾일 줄 모른다. “집회가 너무 선동적이네요. 정치적으로 세뇌시키려는 것 같아요.” 그래. 졌다. 네 팔뚝 굵다!
  지금의 20대 초중반을 이루는 대학생 세대. 이들을 일컬어 ‘IMF 세대’라 부르는 이가 있다. 사실 일리 있다. 1980년대 중후반에 태어나 사춘기 무렵에 아버지의 실직 등 외환위기의 여파를 직간접적으로 경험했기 때문이다. 감수성 예민한 그 때에 뼈저리게 했던 고민, 뭐였겠나. “우리 아버지는 왜 잘렸을까” 이거였을 것이다. 이 화두 앞에서 ‘처세’와 ‘생존’에 대해 고민하지 않는다면 거짓말이겠지. 이후 모든 사안을 ‘가치’보다는 ‘자신의 유불리’에 방점을 두고 사리판별을 하게 된다. 그리고 다수가 2007년 겨울, 투표장에서 밑도 끝도 없이 ‘경제를 살리겠다’고 설레발 떠는 후보에게 표를 헌납했다. 이 후보의 부도덕한 과거를 충분히 숙지했음에도 말이다. ‘참을 수 없는 가벼운’ 현실 인식에 있어 기성세대와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내 말을 들려주려 한다. 요컨대 “너희처럼 처신하면 밥되기 딱 좋다”라는 말이다. 자, 들어보라.
  이명박은 너희에게 일말의 부채의식이 없다. “누가 찍으래?” 이런 입장일 것이다. 너희의 등록금 걱정, 취업 고민에 대해 공감이라도 해줄 것 같나. 천만에. 그러니 등록금 반값 공약을 일말의 거리낌 없이 부도냈다. 아, 이런 대안은 제시했더군. “열심히 공부해서 장학금 받으면 되겠네”라는. 또 너희의 미래? “4대강 살리기 할 테니 삽 하나 들고 와서 한 반 년 일하라”는 게 최선의, 또 전부인 해법이다. 참, 이것도 있군. “정규직인 아버지의 일자리를 없애줄 테니 대신 네가 인턴으로 들어와 커피 타오고 복사나 하라”고 하는.

        386선배들이 있었다면 그래서 권력의 골칫거리가 됐다면,
          과연 이명박이 지금과 같이 무덤덤한 태도를 보였을까.


  누굴 탓하겠나. 너희가 만만하게 보여서이다. 앞서 얘기한대로 지금의 너희 자리에 1980년대 군부 독재 권력에 온 몸으로 항거했던 386선배들이 있었다면 그래서 권력의 골칫거리가 됐다면, 과연 이명박이 지금과 같이 무덤덤한 태도를 보였을까. 이명박은 강한 자에게 약하다. 아무리 수틀려도 미국에게 또 북한에게 찍소리 못하는 거 봐라. 봉하마을에서 험한 꼴 당할까봐 직전 대통령 빈소도 못 들르는 졸렬한 보신을 봐라. 촛불 또 일어날까봐 지나가는 다섯 살짜리의 촛불도 끄게 겁박하는 심약함을 봐라. 만약 천지가 개벽해 대학생들이 조직적인 봉기를 벌인다면, 이명박은 어떻게 나올까. 아마도 대학생 사회를 운동권과 비운동권 둘로 이간하기 위해 등록금 또 취업 정책에 상당한 성의를 나타낼 것이다. “강한 자가 (목표물을) 쟁취할 수 있다”는 원리, 연애에서만 적용되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지금 너희에게 데모할 것을 부추기는 게 아니다. 도리어 만류하는 것이다. 왜냐면, 이미 너희는 뭘 해도 늦었기 때문이다. 너희의 단점, 즉 뒷모습을 이미 이명박이 목격했기에 어설픈 저항했다가는 더 가혹한 보복만 당할 것이다. 그냥 조용히 공부하고, 졸업해서, 삽 들고 안전한 삶의 길을 모색해 나가길 바랄 뿐이다. 이게 내가 해줄 수 있는, 또 너희가 소화하기 좋은 유일한 충고이다. 다만, 나는 지금 10대에게 큰 기대를 건다. 이 친구들은 촛불의 발화점이 됐던 소위 촛불 소년 소녀 세대이다. 우리 사회의 구조적인 문제점에 대해 적극적으로 토론하는 애들이다. 독재 권력은 물론, 우리 사회의 뿌리 깊은 구조적 불평등 현상에 대해 강렬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다.
  이 아이들이 대학에 들어올 내년 또는 내후년쯤이면 아마 우리 대학 사회도 생존의 쟁투장이 아니라 가치와 사상이 꽃피는 진정한 지성의 전당이 될 거라 믿는다. 그리고 이 아이들이 졸업하면 너희 세대를 앞지를 것이고, 곧 우리 사회의 중심이 될 것이라 믿는다. 그래서 이 아이들에게 판 돈 모두를 걸련다. 너희에게 너무 야박하게 들렸을 법한 이야기였나? 하지만 어쩔 수 없다. 너희는 안 된다. 뭘 해도 늦었기 때문이다.


2009/06/15 12:29 2009/06/15 12:29

2002년 제주도 자전거 여행

2009/04/12 00:18 Tags » ,


2002년 제주도, 우도 하이킹, LOMO LC-A


 아마도 2002년 이었던 것 같다. 모두 '의무적'으로 참가해야하는 여름 방학 특기적성 교육(이라고 쓰고 여름 보충 수업이라 읽는다)을 과감히 때려치우고 떠난 제주도 하이킹이다. 어머니께는 여름방학 보충수업의 낮디 낮은 효율성에 대해 말씀드리고, 선생님께는 집에서 자습하겠노라 말씀드리고 3일만에 떠난 여행이었다.
 인터넷에서 찾은 적은 자료들만을 가지고 아무런 준비없이 떠난 여행. 지금 기억으로는 5박 6일의 장기 여행이었던 것 같다. 지도 한장만 달랑 가지고 떠난 제주도 자전거 여행.. 벌써 7년의 세월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 때의 즐거움은 여전히 생생하다.

 다시 LOMO LC-A를 사용하기로 마음먹고 오랜만에 제대로 스캔 떠본 그 당시의 사진들, 당시에 120여장 정도의 사진을 찍었던 것 같은데 지금 내게 남아있는 사진은 스무장도 되지 않는 듯...
2009/04/12 00:18 2009/04/12 00:18

富者 혐오증

2008/10/23 19:36 Tags » , , ,
  예전에 신문 기사를 보다보니 한국의 백만장자 증가율이 세계 4위로 그 증가율이 매우 빠른 편이라고 한다.  물론 최근의 그리고 앞으로 있을 주식시장 및 부동산시장의 폭락에서 많은 이들이 백만장자 클럽에서 쫓겨나겠지만 말이다.  이렇게 富者들이 빨리 늘고 있는 사회에서 그 富者들에 대한 인식은 어떨까?

  서양의 청교도 윤리에 따르면 사람은 신이 그에게 선사한 시간을 의미있는 노동에 사용해야 한다. 정당한 노동을 통해 富를 축적하는 것은 바로 그가 신으로부터 선택받은 자라는 것을 증명하는 행위인 것이다. 그래서 미국사회(가장 청교도윤리적인)에서는 정당한 노동을 통해 富를 축적한 자는 떳떳히 자신의 富를 누릴 수 있고, 사회 또한 그런 富者를 올바른 富者로 인정해준다.

  그렇다면 한국에서는 어떨까? 한국사회는 富者들에게 어떠한 시선을 보내고 있을까? 우리는 그들이 그저 부모를 잘만나서 혹은 운이 좋아서 혹은 뒷돈을 잘줘서 부자가 된 것이라고 치부하고 자기 위안을 하지는 않는지 잘 생각해볼 일이다. 심지어 한국사회는 富者들을 죄인 취급까지하고 그들의 소비, 그들의 생활을 비난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물론 부자든, 서민이든 모두 소비를 해야한다. 그것이 생필품이든 사치품이든 소비는 이루어져야 경제가 돌아가니까)

  도대체 왜 그럴까? 사돈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고 하는데 과연 단순히 그런 질투 때문일까? 아니면 한국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남의 부와 성공을 질시하는 유전자를 타고 나게 된 것일까? 나는 그 주된 원인이 한국 근현대사에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첫번째 주된 원인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한 일제강점기 친일파 청산 작업을 들 수 있다. 일제강점 시절 매국 행위를 하고 일본 측에 서서 기업을 하거나 일본 경찰, 군대 안에서 일제의 하수인을 하던 이들이 제대로 정리되지 못하고 오히려 초대 이승만 정권의 권력을 물려 받게 된 것이다. 민족의 피를 팔아 돈을 벌었던 자들이 독립이 된 후에도 권력의 중심에 앉아 富를 향유할 수 있었다. 이에 반해 국가를 위해 목숨 바쳤던 독립 투사들과 그 후손들은 길거리로 내쫓겼다. 광복 직후의 부자들은 대부분 친일파였다는 명제가 틀리지 않다는 가정아래  당시 富者들에 대한 인식이 어떻게 형성되었을지 가늠해볼 수 있다.

  두번째로는 현대, 삼성 등 재벌기업의 기원과 연관이 있다고 생각한다. 60-70년대 국가주도하의 개발 중 대부분의 사업은 소위 정부에 뒷줄을 잘 댈 수 있었던 소수의 기업들에 의해서 진행될 수 있었고 이와 같은 대규모 국책 산업을 진행하면서 그 소수의 기업은 재벌화 될 수 있었다. 장기적인 독재정권 아래에서 각종 이권개입, 커넥션 등을 통해 발전할 수 밖에 없었던 재벌기업의 행태를 보아 그에 대한 인식이 긍정적으로 이루질 수 없었던 것 또한 사실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런 사회적 부조리가 계속 반복되어 왔고 이런 부조리를 통해 富를 축적한 자들에 대한 인식은 계속해서 나빠질 수 밖에 없었다.  이렇게 사회는 학습 효과에 의해 부조리한 사회 시스템안의 富者들 에 대한 경멸 및 혐오증만 키워가게 되었고, 나아가 富者에 대한 무조건적인 부정적 인식까지 형성하게 된 것이다. 

  이 두가지 원인의 가장 깊숙한 곳에는 올바르지 못한 법적, 정치적, 사회적 시스템이 자리잡고 있었다. 법 체계와 정치 체계가 올바르게 서야  그 사회구성원들의 발전적이며 활발한 경쟁이 이루어질 수 있을 것이고 이러한 발전적인 경쟁이 많아져야 국가가 발전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한국사회가 올바른 과정을 거쳐 부를 획득한 자들을 긍정적으로 인정해줄 수 있는 사회가 될 수 있지 않을까?
2008/10/23 19:36 2008/10/23 19:36

군대와 공산주의

2008/10/11 23:47 Tags » , , ,
   "노동의 가치는 그 노동 행위를 이루어 내는데 들어간 시간으로 측량할 수 있다"는  맑스의 노동가치설을 가장 쉽게 잘 표현해줄 수 있는 명제이다. 이 명제에 기초해 모두 같은 시간만큼 일하면 똑같은 가치를 만들어낼 수 있다는 명제가 재성립되게 되고, 이에 기초해 모두 함께 일하고 공평하게 나누는 공산주의사회가 성립된다. 이는 개개인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높은 생산능력을 갖춘 자와 낮은 생산능력을 갖춘 자를 동등하게 취급함으로서 노동력의 하향평준화를 유도,  전체 노동력 나아가 사회 전체의 효율성을 낮추게 된다.

   우리 한국사회에서 가장 보수적이라고 평가받을 수 있는 곳은 바로 군대라고 할 수 있다. 그 어떤 곳보다 자유민주주의를 신봉하며, 북한공산주의체제 비판에 가장 열을 올리는 곳도 바로 군대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내가 경험한 군사훈련소 및 군대는 아이러니하게도 가장 공산주의적인 곳 이었다..
   군대에서는 모두 같은 시간 만큼 일한다. 빨리 일을 끝낸 사람은 다른 새로운 일을 하거나 일을 빨리 끝내지 못하는 사람의 일을 다시 맡아서 끝내야한다. 일을 열심히하든 대충하든 똑같은 시간만큼 일하고 똑같은 시간에 똑같은 음식을 먹고 똑같은 휴식시간을 가진다. 더 적극적인 사람은 더 많은 일을 하고 소극적인 사람일수록 혹은 게으른 사람일수록 더욱 무임승차할 수 있게되는 구조가 되는 것이다.
  다만 명령과 복종이 중심이 되는 권위주의체제 아래에서 이 무임승차는 어느정도 제어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현상이 우리가 알고 있는 공산주의체제의 맹점과 다른 것이 무무엇일까? 우리의 군대가 좀 더 자본주의적이어 질 수는 없을까? 그래서 좀 더 효율적일 수는 없을까?

2008/10/11 23:47 2008/10/11 23:47